'토끼굴'에 들어가자 모험이 시작됐다

입력 2023-01-27 18:06   수정 2023-05-02 01:02



계묘년, 토끼의 해를 맞아 토끼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늘어나더니 마침내 토끼굴까지 등장했다.

“한동안 잊었던 인플레이션, 경험한 적 없는 장기 저성장 등 토끼굴에 빠져 기존 방식과 전략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로 끌려들어 가는 형국이다.” 지난 11일 대한상공회의소는 대학교수 등 경제·경영 전문가 85명을 대상으로 ‘2023년 경제 키워드 및 기업환경 전망’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토끼굴이 ‘이상한 나라’를 상징하게 된 것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때문이다.

앨리스는 흰토끼를 쫓아 토끼굴에 들어갔다가 모험을 시작한다. 말하는 토끼, 물담배 피는 애벌레 등을 만나고, 물약과 케이크, 버섯을 먹으며 몸이 집채만큼 커졌다가 콩알만큼 작아지는 색다른 경험을 한다.

그러다 툭하면 “이 자의 목을 쳐라!”고 외쳐대는 하트 여왕과 크로켓 경기를 한다. 그의 심기를 건드린 앨리스는 사형 위기에 처하는데, “당신은 겨우 트럼프 카드일 뿐”이라고 외치는 순간 언니의 무릎을 벤 채 꿈에서 깨어난다.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은 언니는 “정말로 이상한 꿈”이라고 웃어넘기지만, 곧 비슷한 꿈을 꾼다.

허무맹랑한 상상은 동심의 특권이고, 어른이 된 후에도 간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 루이스 캐럴은 그런 점에서 ‘이상한 수학자’였다.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1832년 영국 체셔의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가 1864년 수학과 학장이던 헨리 조지 리델의 딸 앨리스와 그 자매들에게 ‘땅속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으로 선물한 이야기다. 이듬해 제목을 바꿔 책으로 출간했다.

필명을 사용해 작가의 정체성을 숨긴 채 강단에 섰다. 1898년 <기호논리학> 집필 중에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 아름다운 동화를 남겼지만, 소아성애자라는 의혹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이 책이 나온 것은 엄격한 도덕주의를 내세운 빅토리아 시대였다. 동화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교훈을 강요했는데, 주인공이 모험을 즐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파격이었다. 출판되자마자 인기를 끌었다.

풍자적 캐릭터 ‘하트 여왕’의 모델이라고 해석되는 빅토리아 여왕조차 이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출간 후 지금까지 17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 각색돼 큰 사랑을 받았다.

미지의 세계에는 위험이 도사리지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기회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말하는 듯하다.

‘불확실성’의 터널에 접어든 올해, 체셔 고양이의 이런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달라’는 앨리스에게 체셔 고양이는 말한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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